제목 : 기조강연-2009IPCR국제세미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1-30 조회수 4822
 

IPCR 2009 국제세미나 기조 발표문

“평화교육과 종교의 역할”

                

                                

(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장

ACRP 사무총장 국회의원 김성곤)


 1986년 한국의 서울에서 ‘아시아종교평화인회의’ (ACRP) 3차 총회 ‘총회 후 사업’ (Post Assembly Project)의 일환으로 ‘서울평화교육센터“를 건립하였다. 이 평화교육센터가 내부 사정으로 지난 10 여 년 동안 활동을 중지하였으나 조만간 동 센터를 다시 개원할 예정이며 이번 KCRP와 IPCR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국제 세미나도 새로운 개원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 세미나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심도 있는 논의가 전개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서울평화교육센터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에는 내적 평화와 외적 평화가 있다. 내적 평화란 인간의 영성, 마음의 평화로서 개인적 평화라고 할 수 있으며 외적 평화란 정치, 경제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평화라고 할 수 있다. 내적 평화든 외적 평화든, 개인적 평화든 사회적 평화든 인간은 모두 평화를 희망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평화란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서 대체로 평화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고 전쟁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경우라도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고 말하지 정신이상자가 아니고서는 전쟁 자체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평화도 자유와 정의와 복지가 충만한 ‘적극적’ 평화가 있고 전쟁상태는 아니지만 자유와 정의와 복지가 빈약한 ‘소극적’ 평화도 있다. ‘소극적 평화’를 ‘적극적 평화’로 끌어올리기 위해 때로는 전쟁을 포함한 무력 사용이 합리화되기도 한다.

 내적 평화란 외적 상황이 전쟁 상태이건 아니건, 내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며 불교에서는 이를 일러 ‘니르바나 (열반 : 涅槃)’라고 하며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라는 것도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상적인 전쟁 유무와 상관없이 깨달음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는 과거에서부터 지금도,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깨닫지 못하거나 하나님과 합일하지 못한 사람은 알기 어려운 ‘절대 평화’의 세계이다.

 외적인 평화, 사회적 평화도 이 내적 평화, 개인적 평화를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참 평화가 온다. 그렇지 않은 평화는 모래 위의 성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릴 수가 있다. 가정의 평화로부터 국제적인 평화에 이르기 까지 평화가 깨지는 근본 원인은 인간이 이 내적 평화를 잃어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유네스코 헌장에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다”라는 명문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즉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문제로 귀결되며 여기에 평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2. 평화교육이란 무엇인가? 
   1) 광의의 평화교육

 넓은 의미에서의 평화교육이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교육 즉 예절교육, 윤리교육, 시민교육, 국제이해 교육 등 모든 형태의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화 교육은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직장과 종교공동체, 시민단체, 나아가 정부기구, 국제기구 등 크고 작은 여러 레벨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레벨, 어떤 종류의 평화교육이든 내적 평화에 대한 이해 없는 교육은 평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폭력은 법으로 처벌 받는다는 식의 교육만으로는 폭력의 근원을 제거하지 못한다. 진정 이웃을 마음으로부터 형제로 생각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만 폭력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공자의 말씀은 사회적 평화가 내 개인의 수양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명언이다.

 그러나 내적 평화, 개인의 수양만 잘 한다고 해서 평화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탄압, 경제적인 불평등, 사회적인 차별 등으로 인해 집단간, 개인 간에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지므로 평화를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개선하고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환경, 모든 분야에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고 자유와 정의와 복지가 증진되도록 하는가에 가르치는 사회적 평화 교육이 필요하다.

 올바른 평화교육은 내적 평화와 외적 평화, 개인적 평화와 사회적 평화에 이르는 길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기능적으로 내적 평화, 개인적 평화는 주로 가정과 종교 공동체에서 그리고 외적 평화, 사회적 평화는 학교와  사회 공동체에서 가르치지만 이 둘은 서로 떨어진 분야가 아니고 기능상 상호 보완적이다. 즉 완전한 평화는 내적평화로 출발하여 외적 평화로 완성된다.

   2) 협의의 평화교육

 좁은 의미에서의 평화 교육은 근, 현대에 생긴 개념으로서 전쟁의 원인 및 본질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깊게 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군비 철폐와 핵감축에 의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창조와 인권의 신장을 실행할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말한다.

 특히 1, 2차 대전 때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국가주의에 기초한 애국을 강조하였고 북한과 전쟁을 치룬 우리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반공을 국민들에게 요구하였다. 또한 국가간에 물리적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라든지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 경쟁‘은 어떻게 해서든 상대 국가와 공존 상생하기보다는 약육강식의 반 평화적 국제 질서를  지속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힘이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는 논리로서 핵을 포함한 군비 강화가 평화 유지의 수단으로 합리화 되고 있다.

 한편 유네스코는 1972년 ‘국제이해, 국제협력, 국제평화를 위한 교육 및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교육에의 권고’에서 교육은 확장, 침략, 지배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용납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평화에 대한 각자의 책임을 이해시켜 실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국제협력에 의한 평화교육의 강화를 제정하고, 구체적으로는 가맹국 상호간에 역사, 지리, 등의 교과서를 교환하여 국제관계의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네이버 “평화교육“)

 이런 의미에서 근대에서 시작된 협의의 평화교육은 주로 국제적인 평화를 위한 것으로서 앞서 필자가 말한 외적, 사회적 평화에서 주로 국제 관계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평화교육과 종교의 과제
 전통적으로 내적 평화, 절대 평화에 대한 교육은 종교 공동체에서 해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이나 부처님, 공자님은 아주 훌륭한 평화 교육가이며 실제로 제대로 된 종교 교육은 그 자체가 평화교육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평화교육’이란 개념이 근대에 생기기 전부터 인류는 오랫동안 평화교육을 실제로 해왔다고 말해야 한다. 

 내적 평화교육 혹은 종교 교육의 요체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하나,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두에게 평등한 사랑과 정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신론적 종교의 언어를 빌린다면 우주의 근원자인 하나님은 결국 한 분이요, 따라서 모든 인류는 한 형제이기에 서로 사랑을 베풀어야 하며 무신론적 종교의 언어를 빌린다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하나의 원칙(道) 속에서 움직이기에 깨달은 사람은 고통에서 헤매는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평화교육은 이 ‘하나’의 진리를 가르치는데서 출발하고 ‘하나 됨’을 실천하는데서 평화는 완성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종교교육자체가 평화교육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내 종교만이 절대 진리이고 상대 종교는 사탄이거나 오류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거나, 혹은 상대 종교를 무시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종교 공동체들이 있다. 이는 종교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종교를 우상화, 절대화시키는 오류에서 출발한다. 특히 이러한 태도는 중국, 인도 계열의 종교보다 아브라함 종교라고 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특히 심하며 오늘날 중동전의 간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종교 공동체에서 내적 평화만 강조하고 외적 평화의 중요성을 소홀히 하는 것도 문제다. 내적 평화, 개인적인 평화는 외적 평화, 사회적 평화로 완성되어야 하기에 종교 교육이 개인의 영성 교육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환경 모든 분야에서 자유, 평등, 복지가 충만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평화가 온다.

 종교에서는 온 인류가 한 형제이니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이것은 실제로 국제 사회에서는 아직 이상론일 뿐이다. 형제들끼리 서로 양보하라고 가르치지만 한국과 일본은 조그만 섬 ‘독도’(다케시마)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다. 형제들끼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라고 가르치지만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아직도 과거사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과 베트남, 스리랑카와 인도, 인도와 파키스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직도 많은 국제적 갈등에 있어서 평화와 평화교육은 구두선일 뿐 그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4. 한국에 있어서의 몇 가지 과제
 근대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물질문명이 크게 일어나면서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현대인의 마음의 평화를 깨는 첫 번째 이유다. 이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경제 발전을 국가적 최우선과제로 삼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더 심하다. 개인 뿐 아니라 국가 자체가 물질적 풍요를 목표로 세계와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 모두가 ‘부자 되기’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국민 모두가 서로 사랑하기는커녕 서로가 질시의 대상이 된다.

 또한 신분 상승의 욕구 때문에 일류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입시 전쟁으로 인해 교육이 반 평화적으로 가는 것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교육은 서로를 사랑하는 평화적 인간을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좋은 성적을 위해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반 평화적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한국 뿐 아니라 경제적 성장을 주 목표로 하는 많은 아시아 그리고 세계 국가의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종교적, 이념적 생각을 절대화함으로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성 역시 한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남북간에 이념 대립으로 수백만 동족을 죽이는 전쟁을 겪었으며 지금도 좌파와 우파 간의 이념적 갈등이 한국 사회 갈등의 기저에 깊이 깔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의 남북갈등을 넘어서는 통일 교육은 평화 교육의 커다란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미 4,300년 전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건국이념을 갖고 역사상 남의 나라를 한번도 침략하지 않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로서 아직도 정치적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지만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국민적 열망이 크다. 한국에 평화교육센터를 건립하려는 것도 이러한 열망의 표현이며 언제가 한국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평화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한다.  

        5. 결론

  인간은 내적 평화와 외적 평화, 개인적 평화와 사회적 평화가 모두 온전하게 이루어져야한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 종교는 인간의 내적 평화, 개인적 평화를 주로 가르쳐 왔으나 잘못된 종교 교육, 특히 배타적 종교 교육은 평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또한 종교에서 가르치는 내적 평화는 외적 평화를 완성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즉 모든 존재와 하나 됨을 깨달아 보편적 사랑을 실현하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에서 적극적 평화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평화로운 국제 질서를 이루기 위한 평화교육이 필요하며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의 큰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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